그늘 속 침묵의 언어로 던지는 질문, 정윤석의 <논픽션 다이어리>

변성찬(영화평론가)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우연이었다. 한 케이블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난 후, <논픽션 다이어리>를 보았다. ‘서울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은 <응답하라 1994>의 1화는, 지방 출신의 한 청년이 처음 와 본 서울 거리에서 겪게 되는 당황스러운 일화를 코믹하게 전해 주고 있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90년대에 본격화된 소비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농촌 출신 청년들이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을 ‘지존파 사건’의 사회적 배경으로 제시하는 한 전문가 인터뷰를 들려주며 시작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90년대 초반을 X세대라 불리는 신인류의 탄생 시기로 낭만적으로 추억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시기를 너무 충격적이어서 몸서리쳤던 한 사건이 발생했던 때로 기억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이상한 일이다. 94년에 발생한 지존파 사건은, 그 자체로 너무 충격적이어서 쉽게 잊힐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이후 매스미디어를 통해 반복해서 환기되었던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90년대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말하자면, 나에게 지존파 사건에 대한 기억과 90년대에 대한 기억은,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일종의 ‘해리성 기억장애’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기억의 착시 현상은, 단지 나만의 것이었을까?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90년대에 대한 낭만적 추억의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90년대에 대한 우리의 기억 속에 누락되어 있던 지존파 사건을 불러들임으로써 90년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다. 물론 그 질문은 단지 과거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현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90년대의 수많은 사건 사고를 담은 기록 영상들의 몽타주를 통해서 두 얼굴을 지닌 그 시대에 대한 명료한 초상을 그려 내고 있는 영화다. <논픽션 다이어리>가 제시하는 ‘다이어리’(주요 사건일지)에 따르면, 90년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93년 2월부터 98년 2월까지의 소위 ‘문민정부’ 시대)는 지존파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한 시기이고, 지존파에 대해서는 검거 후 불과 1년여 후에 사형이 집행된 반면,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의 책임자들에게는 관대한 법 집행이 실행되었던 시대다. 또는,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 속에 전두환, 노태우에게는 특별 사면이 내려진 반면, 도덕성 회복 및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 속에 지존파를 포함한 총 57명의 ‘흉악사범’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진 시대다. 또한 ‘신한국’ 건설 및 ‘세계화’라는 당당한 포부를 내세우며 출발했지만, IMF 사태로 초라하게 막을 내린 시대다.

하지만 <논픽션 다이어리>의 영화적 의의는, 결과적으로 그려 낸 이 명료한 90년대에 대한 초상에 있다기보다는, 그 시대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었던 지존파 사건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 보고자 했던 출발점 또는 그 진정한 예술적 의지에 있다. 쉽게 재현될 수 없는 사건이 있다. 지존파 사건 역시 그런 사건 중의 하나다. 그것은 단순한 연쇄살인 사건이 아니라, 그 ‘조직성’과 ‘엽기성’ 때문에 충격이었던 사건이다. 당대의 매스컴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한 당혹감을 도덕성 담론(인간성 회복 및 법질서 확립)으로 이겨 내려고 요란하게 애쓰고 있었고, 그 이후 반복된 매스컴의 사후적 재현도 단지 그 요란함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이 요란한 담론에 조용한 증언을 맞세운다. 지존파의 마지막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증인들(담당 형사, 교도관, 상담 목사 및 수녀)의 증언, 그리고 무엇보다 오로지 자막(침묵의 언어)으로만 들을 수 있는 지존파 멤버들의 ‘법정 진술’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어두운 그늘, 그 그늘 속의 침묵의 언어, 그 그늘과 침묵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양가성, 그 모든 것 안에는 <논픽션 다이어리>가 던지고자 하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윤리적 질문이 담겨 있다.

P.S. 감독 정윤석은 <별들의 고향>(2010)의 연출의 변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소비했던 옛 ‘유령들’의 곡소리가 구슬펐던 과거의 진혼의 곡이 아닌, 다가올 망자를 위한 곡이었음을 깨닫는다.” <논픽션 다이어리> 또한 단순히 과거의 망자(지존파)를 위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다가올 망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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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존파 사건으로 1990년대의 지형도를 그렸다"
부제 : <논픽션 다이어리> 정윤석 감독

전문 : <논픽션 다이어리>는 1994년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지존파 사건이 중심에 놓이는 다큐멘터리다. 지존파는 돈 많은 부유층에 앙심을 품고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일당의 조직명이었다. 하지만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와 그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정윤석 감독은 지존파 사건이 미친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파장 등을 탐구하며 1990년대의 한국을 돌아본다.

미술과 영화 작업을 병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주로 쓰는 '미술'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예술'(Art)이라 표기한다. 이러한 예는 우리가 상상하는 미술의 범주가 훨씬 넓다는 점, 즉 동시대적인 예술 그 자체로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종 외국에서는 영화감독들이 극영화도 만들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도 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한국의 교육은 아직까지 영화란 매체를 각각의 장르적 특수성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마 내가 미술작가로 활동하면서 영화작업을 병행할 수 있는 까닭은 영화와 미술을 '시각예술'이라는 동일한 범주 안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경우, 전시보다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영화로 가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집단적 경험이 이 주제에 꼭 필요할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였나?
2007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범죄에 관련한 전시를 제안을 받고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관심은 '지존파'라는 소재보다 연쇄살인범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 목적이 맞춰져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다이어리 형식으로 제작했었다. <살인의 추억>(2003)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사회에서 연쇄 살인이란 시대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렇기에 범죄라는 행위를 추적하다 보면 한국사회의 시대적 지형도를 그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중 나는 한국의 1990년대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1994년에 발생한 지존파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이전 전시의 형태는 어떤 것이었나?

현재는 잠실나루 역으로 바뀐 성수 역 쪽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허물어지기 직전의 재개발 아파트단지였는데 그 안에 서 있으니 기분이 묘하더라.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빈 집 뿐이었지만 각각의 방에는 어린이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이나 벽에 쓰인 낙서 등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서 이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였다. 이미 공간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그 공간의 기억은 남아있는 상태, 이러한 모순에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즉,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살인에 대한 모든 정보와 자신의 범행을 기록해놓은 일기장이 있다. 그 일기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살인이라는 광기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한권의 일기는 내가 만들어낸 상상의 기록이기도하다.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연쇄살인범의 다이어리를 우연히 발견한 뒤, 전시장에 옮겨놓는다는 설정 , 그 책 제목이 바로 '논픽션 다이어리'였다.

지존파 사건은 1990년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다. 1990년대를 어떤 시대로 기억하나?

사실 1990년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1994년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고 등굣길 마을버스 안에서 한 시간 정도를 서있었다. 평소와 달리 차가 오랫동안 안 가다보니 승객들이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때 갑자기 마을버스 라디오에서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속보가 들려왔다. 그 뉴스를 듣고 버스안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다들 라디오 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있었고 모두들 큰 충격을 느낀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뉴스를 듣고 있던 중에 내 뒤에서 나이 드신 분이 갑자기 "이게 다 빨갱이 짓이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라. (웃음) 그 순간이 너무나 강렬해서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더욱 주목한 건 지존파 사건이었다.

이 영화에는 지존파 사건부터 삼풍백화점 붕괴, 지존파의 고향인 영광지역의 민간인 학살사건, 5.18 광주 민주항쟁 등 여러 종류의 죽음들이 등장한다. 엄밀히 보면 지존파의 범행은 원한에 의한 살인이었지만 그들을 둘러싼 나머지 사건들은 국가 이데올로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예고된 살인’이었다. 나는 지존파 사건을 통해 '살인'이라는 범주를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확장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오늘날 한국사회에 대한 부채감을 느낀다. 알다시피 지난 5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러한 사태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이 되는 1990년대를 주목해야한다고 본다. 한국의 1990년대는 민주화 운동 이후 개인이라는 주체와 함께 자본의 풍요를 경험했던 시기였다. 1980년대 독재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자본론을 읽었던 사람들이 본격적인 자본의 소비주체가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사회는 단군 이래 최대참사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목격하였다. 고도의 자본주의가 발달하던 시기에 '백화점'이라는 자본주의의 상징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상상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등장한 지존파 사건은 자본주의 모순을 범행 동기로 표방한 최초의 연쇄살인범이자 한국의 압축 성장과정에서 표면화 되지 않았던 계급적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요 몇 년 전부터 한국 문화에는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나 영화 <건축학개론> 같은 1990년대 돌아보기 붐이 일고 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같은 시대를 공유하지만 문제의식은 전혀 달라 보인다.

질문처럼 오늘날 한국사회의 1990년대에 대한 붐은 일종의 문화적 복고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픽션 다이어리>는 1990년대를 문화적 복고주의가 아닌 동시대의 거울로 바라본다. 특히, 나는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1997년 IMF 사태까지의 10년에 주목한다. 알다시피 오늘날 비정규직 합법화의 모태가 되는 노동법 개악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우리 세대에게 1990년대는 '서태지'로 대표되는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기억되지만 그 이면에 가린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1987년 '서울의 봄' 이후 정치적 결과물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나타났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풍경들은 바로 1990년대의 실패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본다.

그래서 <논픽션 다이어리>는 1990년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만 형식적으로 하나하나 해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비유해보자면 이런 것이다. 각각의 구슬을 꿰어 하나의 목걸이로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영화라면, 각각의 구슬을 한 움큼 쥐어 바닥에 뿌린 뒤 그 흩어진 모양을 의미화 하는 것이 미술의 방법론이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이 양자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영화이다. 알다시피 전통적인 내러티브 영화들은 캐릭터가 스스로 사건에 휘말리며 이야기를 성장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하나의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나가기보단 지존파가 가진 사회적 맥락들을 해체하가며 사건의 본질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와 같은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던 까닭은 이 영화가 1990년대에 대한 일종의 '풍경화'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국가'란 존재를 다시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굉장히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았지만 지존파를 중심에 놓고 하나로 묶는다는 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거다. 그로 인해 겪은 고민은 무엇이었나?

<논픽션 다이어리>를 만들면서 했던 가장 큰 고민은 살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나를 포함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살인을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웃음) 이 영화는 지존파의 살인부터 5.18 광주 민주항쟁까지 숨 가빴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작가로서 겪어보지 못한 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 안에서 어떠한 균형점을 찾아내야한다는 중압감이 컸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종교에 기대는 까닭은 자신의 욕망과 그로 인한 상실감이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국 지존파가 사형당하는 마지막 순간에서 용서와 구원이라는 키워드를 배제하고 연출자로서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지존파와 삼풍백화점을 연결해 1990년대를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무언가를 정의내리기보다는 생각할 거리들을 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당위적인 질문을 좋아하진 않는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착하게 살아야한다'고 조언한다면 나는 그가 왜 착하게 살고 싶어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인간이 선해야한다'라는 당위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왜 선하고 싶은 것인가?', '인간이 악하면 안 되는 것인가?'란 질문으로 이어져간다. 이러한 반문에는 '과연 당신은 다른가?'라는 질문이 내포되어 있다. 사실 예술이 종교와 구별되는 지점은 이러한 반문에서 출발하며 위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할 수 있다. 지존파 역시 마지막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지존파를 통해 새로운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건의 원인을 돌이켜봐야 하고 동시에 각자의 질문들을 끊임없이 수정해야만 한다. 나는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바로 그런 질문들의 이어짐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글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 사진 김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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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신문 07. 버수스 예술과 정치 좌담: 2013. 8. 9 @테이크아웃드로잉 김홍중 vs 현시원

정윤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는 사회학 연구와 예술 작업의 경계에 있다. 이 영화가 90년대 널리 알려진 지존파 사건을 일깨워 낮선 자극을 직조해 낼 때 그 씨실과 날실 은 과거와 현재다. 분명히 겪은 일들이 새롭게 살아오는 놀라움과 굴종에 길들여지지 않는 예 술가의 날선 질문들이 대련을 펼친다. 이 영화를 보고 사회학자 김홍중과 큐레이터 현시원이 만나 오랜 이야기를 나눈 이유다.

학문과 예술/ 또는 사회학과 예술

현시원
올해 초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 조은 교수의<사당동 더하기 25>였어요.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 이 있어요. 책의 한 축에 저널리즘이 있다면 예술은 또 다른 한 편에 서있는 것 같은데, 어떻 게 보면 이 글은 기자가 쓰는 글 같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로 봤을 땐 특별하다고 보기 힘 든데 이 힘이 뭘까 궁금했죠. <사당동 더하기 25>의 서술이 힘이 있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선생님이 쓰신 리뷰를 읽었어요. 학문으로 구분하기에 앞서 <사당동 더하기>의 글을 다 른 형식의 글쓰기가 가진 힘으로 보신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학문이 시대에 어떻게 말을 걸어볼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책 <마음의 사회학>을 보면 활력 있는 일상어를 느끼기도 합니다. 사회학자가 학문적 글쓰기 외에 현실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은 동시대 예술과 만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라 봅니다.

김홍중
저는 학문이 시대에 말을 거는 방식을 ‘시대착오’라고 생각해요. 그게 학문의 슬픈 점이에요. 말하자면, 뒷북을 치는 거죠. 시대는 언제나 빨리 지나갑니다. 발생하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서 학문이 개입하고 관찰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뒤늦은 이후에요. 그런 점에서 학 문은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학문과 시대가 이처럼 결코 동시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 학문의 가장 큰 비애이자 자랑일 수도 있는 거지요. 왜냐 면 사실 어느 누구도 동시대와 동시대적으로 관계 맺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왜냐하면 동시대 라는 것은 무한한 지평이니까요. 학문에게 중요한 건 자기가 결코 할 수 없는 일, 그러니까 동시대적으로 자신의 시대에 접근할 수 없다는 그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되, 그 한계야 말로 어쩌면 학문이 한 템포를 늦춰서 시대의 중요 핵심들을 관찰하고 짚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갖 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역설을 믿는 일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시간적 어긋남은 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은, 특히 좋은 예술은 본의 아니게 한 템포 빠르게 시대와 관계를 맺죠. 그래서 의도치 않게 예언적이거든요. 놀라운 건 시간이 지나야 그 예술 작품이 시대와 맺는 관계가 포착 된다는 점이죠. 말 하자면 예술도 어떤 의미에서는 아나크로니즘적으로 시대와 관계를 맺는 거예요. 예술과 학문이 묘하게 엇갈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은 시대를 조금 앞서서 표현하고 진단해내는 것 같고, 학문은 한발 늦어서 진단하는 거 같아서 이 둘 간의 교감과 소통은 쉽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언적 능력이 시대를 앞서 있기 때문에 시대의 가능성을 책임질필요가 없지만, 학문은 반대로 자신들의 늦음 속에서 시대를 포착하려고 안감힘을 쓰기 때문에 양자의 접촉은 쉽지 않아 보여요. 그래서 사실 양자를 어떻게든 결합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은 많은 경우 실패한 것이겠지요.

현시원
말씀을 들으니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는 예언적이면서 시대착오적인 게 겸비되어 있는 것 같네요. 어떻게 보면 작품 자체가 과대망상 속에서 나왔다,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5년 동안 정윤석 감독은 지존파 사건에 꽂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게 사회적인 현실에 대한 감독의 집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언가적인 풍모이기도 한 거죠. 결국은 20대의 젊은 살인자를 다루는 것도 구원이 언급되는 걸 보면 종교적인 측면이 있거든요. 예술의 예언 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지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과거를 얘기하는데, 한편으로는 '왜 우리 는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 해야하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이 작업의 이야기에 기본적으로 공감은 하지만 소재를 쉽게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질문을 던져볼만 해요. 5년 이라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소재적으로 쉽게 취할 수 있는 과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어렵게 취재한 ‘과정’ 자체에 너무 기댄 발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김홍중
말씀에 공감하면서 덧붙이자면, 우리 시대에는 시간의 체험이 선형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현재, 미래가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가 않아요. 현재가 워낙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현재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살아야하는 순간들이 오는 거죠. 예를 들면, 저는 이것을 "이미/아직"의 시간이라 부릅니다. 이미 지나간 것이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남아있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유년기가 그렇습니다. 살았지만, 아직 살지 않은 것 처럼 망각되었어요. 일상도 그렇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일상 들의 체험들은 이미 산 것이지만 아직 제대로 체험, 지각, 감각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 있 지요. 매스미디어를 통해 폭격을 당하듯이 쏟아지는 정보를 체험하는 시간도 그렇죠. 우리는 그걸 처리할 수 있는 시간도 없습니다. 정보와 인상과 풍경과 감각이 끊임없이 우리를 통과해 가서 흔적을 남기며 사라져가는 그런 빠른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가며 우리가 살고 있을 때, 과거란 또는 현재란 무엇인가요? 과거는 기억이 정돈되어, 구획되어, 질서를 부여받아 시체들 처럼 묻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회상의 대상들로 충만해 있는 유령적인 무 언가로 변화합니다.'이미' 살았지만 '아직' 살지 못한 것이 우글거리고 있는 거예요. 특히 한국처럼 시간이 빠른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길게 보면 지난 100여 년 정도의 집단적 기억과 시간이 그렇고, 특히 과거의 한 10여년은 언제나 더 그런 시간의 특성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나갔다는 물리적 의미에서는 과거이지만, 그것이 아직도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 있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현대처럼 여겨지는 그런 시간 말이죠.

그래서 최근 예술가들이 과거에 관심을 많이 갖고, 과거 속으로 탐구해 들어가는 건, 단순한 복고 취향이나 노스탤지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에 관심이 있고, 지금의 문제에 대한 예술적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지금이 사실 불가피하게 과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요. 바로 그런 시간적 구조를 제공하는 미디어 환경과 지각적 환경 속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 과거의 탐구를 통해서 지금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령 용산참사라는 동시대적 문제는 그것 하나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본질적으로 유사한, 그리고 아직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수많은 집합기억 속에 있는 ‘참사들’을 환기시키는 것이죠. 용산참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죽지 않은 과거를 이해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윤석 감독의 작품도 그렇게 느껴져요. 의도적인 연결도 있겠지만, 아마 위와 같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현시원
정윤석 감독이 81년생으로 젊은 작가 중에서 도전적으로 90년대를 끌고 나왔다고 할 수 있어 요. 문학에서는 80년대의 후일담과 90년대의 일상을 쓰는 걸 이미 오래 전 볼 수 있었지만, 미술에서 90년대가 어떻게 복기되었나를 떠올려봤을 때 정윤석 작가는 매우 돌출된 경우라고 생각해요. 젊은 작가들이 현재 또는 과거를 불러내는 방법들은 부유하는 본인의 임시성을 드러내는 정도의 발언으로 체화하는 걸 근래 많이 보았어요.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은 2000년대 후반에서는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정윤석 작가의 작업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어떤 부분 표명하고 있거든요. 왜 자신이 90년대를 보는지도 명확하게 밝히고요. 그래서 이 작업 이후에 정 치적인 입장 또는 과거를 작업을 다루는 작업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호기심도 생겨요.

김홍중
그렇다면 같은 세대들의 사회, 정치를 다루는 미술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현시원
80년대 민중미술이 있었고, 이후 386 세대들이 스스로를 ‘민중미술 이후다’라고 적극적으로 표방하진 않지만, 9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영향과 도시담론을 흡수하면서 형식적으로는 민중 을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이슈들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90년대 후반부 터 2000년대 초까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권 이후로는 젊은 작가들은 허약한 미술제도에 대한 불안감을 이야기하고, 신진작가제도를 통해 미술관에 픽업되거나 본 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불안한 대안을 보여주는 게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의 표출로서 의미있던 작업인 것 같아요.

그 외에 '경향'이라고까지 말하긴 힘들지만, 도시의 사라지는 공간들, 재개발, 재개발회화가 2008년도 무렵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또 2000년대 들어 2010년 무렵부터 작가들이 협업하고 콜렉티브를 결성하는 일이 더 많아졌어요. 예를 들어 옥인콜렉티브는 세 명이 팀을 이루어 활동하는데 '팀'이라는 방법도 그 자체로 제도의 허약함을 대변하는 거라고 보는데, 게릴라성 으로 활동하기도 편하고요. 이들은 종로구 옥인동의 철거된 아파트를 가지고 활동했거든요. 그러니 지존파나 정치라는 이슈를 가지고 정윤석 작가처럼 전면적으로 말을 걸어본 작업은 근래에 보기 힘든 것이죠.

김홍중
(아까 조은 선생님 얘기도 했는데) 제가 조은 선생님의 논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사회학적 모 나돌로지monadologie'라는 표현을 썼어요. 사회학은 방대한 통계자료를 다루는 정상과학이에 요. 가령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에 1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얼마냐 하는, 그런 방식의 접근이죠. 전수 통계를 가져야 사회 전체를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요.

그런데 조은 선생님은 그 반대쪽에서 사회학을 하고 계신거죠. 예술적 매체나 방법을 사회학적 방법과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이 그 때문이에요. 가령 대상의 싱귤레러티(독특성)에서 출발하 는 거죠. 대상이 싱귤러하다는 것은 혼자 특이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를 보여주는 '모나드' 같은 해석학적 함의를 품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례는 하나지만 그걸 잘 열어보면 사회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는 거죠. 조은 선생님은 그런 케이스(실례)로 한 가족을 잡은 거잖아요. 정윤석 감독의 작업도 유사하죠. '지존파'는 하나의 사 건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사건의 형식으로 나타난 구조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구조의 가시화인 셈이죠(가령, 일련의 재난이라는 구조).

80년대적인 것이 끝나고 90년대적인 것으로 전환 하던 시점에서 돌출한 한 사건에서 계급 적대, 도시와 농촌의 갈등 등이 압축된 모나드를 발 견한 것이죠. 이것을 하나씩 벗겨내는 방법과 시선의 침투가 저한테는 조은 선생님의 작품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꼭 쓸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가지고 사회적 삶의 큰 모습을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는 정감독의 작업도, 모범적인 사회학적 모나돌로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것 안에 우주 전체가 들어있는 것처럼 말이죠.

앞에서 학문과 예술이 만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지만, 조은 선생님이나 정윤석 감독의 경우 는 양방향에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간 시도라는 점에서 재미있어요. 사회학에서 예술을 끌어오는 조은 선생님과 예술 쪽에서 사회학을 끌어 오는 정윤석 감독님 모두가 말이죠. 사회 학자 입장에서는 리얼리티가 있는 작품에 흥미를 갖게 마련이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고통이 잘 보이는 작품이요.

현시원
저도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동시대의 리얼리티를 탐구하고 싶어요. 리얼리티가 꼭 정치사회의 이슈 차원이 아니라 작가들이 작업하고 존재하는 방식, 이들이 현실을 다루는 것을 보는 일도 중요하니까요.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논픽션 다이어리>의 경우 극장이라는 집단관람 형식으로 인해 작업의 폭발력이 더 있지 않았을까 해요. 만약 이 작품이 전시장에 있 었다고 한다면 스펙터클과 몰입의 정도가 덜하지 않았을까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리얼리티를 다루는 방식 또한 극장이라는 대중예술의 공간적 장점을 취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 힘을 더 느낀 것 같아요. 작가가 5년 동안 작품을 만들면서 부분적으로 광주비엔날레나 아틀리에 에르 메스 등에서도 상영되었는데요 감명받은 한 명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영화에서 상영됨으로 인해서 받은 감동은 분명 다를 것 같아요.

김홍중
그날 작품에 대한 이야기의 자리 역시 전체적으로 풍성하게 어우러졌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영화 한 편을 그냥 보고 나간게 아니라, 그와 연관된 이야기를 작품 외부에서 나누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관객들의 세계 쪽으로 성큼 다가서 들어온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사실 90년대 중반이라는 것은 (저와 감독은 10년 차가 나는데) 저에게는 대학, 대학원 시절이니까 정신적으로 저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들의 토대가 결정된 시기에요. 저는 제가 '90년대적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386 세대의 세계관에는 100퍼센트 동의할 수 없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있었고, 거기에 90년대의 혼란과 가벼움의 가면을 쓴 채로 생활했던 아이러니를 잘 알고 있는 거죠.

그러한 90년대를 살아온 저에게 정감독의 작품은 허를 찌르는 느낌, 나의 속살이 드러나는 느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정신적 90년대 인간'인 내가 아직까지 객관적이고 날카롭게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 없었던 영역, 그리고 그 시대의 내밀성을 형성했던 사회적 힘들을 저보다 10년 뒤에 태어난 누군가가 메스를 대고 째고 들어가듯이 보여주었다는 ‘황당 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거예요. 이건 저보다 10년 어린 세대가 우리 세대보다 더 똑똑하기 때 문에 해 낸 성과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는 가질 수 없었던 당대성에 대한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 가능했던 성과라는 의미에서 입니다. 환상이나 노스탤지어 없이 비교적 순수한 호기심으로 그 시대에 접근해서 더 객관적이고 더 재미있게 그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세대

현시원
재미있네요. 저는 제가 몇 년도 사람인지 헷갈리는 것 자체가 분열의 시작인 것 같아요. 분명 한 건 정윤석 감독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저는 텔레비전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삼풍백 화점 사건 등은 제겐 '이미지'에요. '아가동산'이라는 사이비 종교 이야기, 88올림픽, 김일성 시체가 담긴 관 등 집단적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죠. 지존파 사건이 있던 1993년 저는 중학생이었는데, 정윤석 감독 작품을 보면서 제가 청소년으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비현실적으로 그 때의 사건들은 마치 남의 이야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정윤석 작가에게 작업의 모티프가 대중 매체에 대한 어린시절과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 어릴 때 범죄 잡는 프로도 많지 않았느냐 물었는데, 정윤석 작가는 어릴 때 티비는 안 봤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정윤석 감독 영상에서 가장 중요했던 작가의 원경험이 무엇이었을까 가장 궁금했거든요. 미술가가 되려고 생각하기 훨씬 이전에, 작가가 꼬마일 때 보았던 대중매체 이미지나 어른들의 이야기가 이 작업에 이상하게 스며들어 있을 거라 예상했거든요.

김홍중
저는 항상 모든 현상들을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시간과 경험 사이에는 묘한 엇갈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특정 시점을 체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시점에 대한 예술적, 학문적 접근에서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정윤석 감독 이 자신의 유년기였을 90년대를 영상화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됩니다. 정 감독에게 90년대는 저에게는 아마도 70년대 후반일 거예요. 저는 70년대에 후반 그러니까 제가 어릴 적에 TV에서 본 박정희, 김종필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어요. 그가 타고 다닌 검은 세단의 이미지도요. 유년기의 허술한 기억에 남아 있는 인상들 중에는 의외로 정치적 이미지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유년기에 스치듯 체험한 이런 아련한 이미지들을 파고 들어가서 그 시대의 핵심을 발견해 내는 작업에 성공한다면, 아마 그 시대를 청년으로서 치열하게 살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 시대와 아직 냉정한 거리를 두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는 50대가 도리어 허를 찔리는 느낌을 받겠죠. (지나친 도식화인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이후에 겪은 것들은 단단한 건물과 같이 구조화되어 있어서, 아예 파괴해서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그 뼈대들 전체를 재구성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대신 유년기의 체험은 폐허적 으로 불완전한 공간으로 남아 있어요. 단서도 부족하고, 구멍도 많은 거죠. 잔해들로 뒤덮인 폐허 같으면서 또 그 잔해들이 그 자체로 매혹적이기에 몽타주와 같은 놀이의 대상이 되는 것 이라 생각해요. 예술과 학문 모두에서, 10대 이전의 경험은 그 안으로 어떤 방법으로 들어가 서 놀 수 있고 창조적으로 정치적으로 재해석 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 각해요. 그래서 젊은 작가들에게 80, 90년대는, 창조적 놀이공간인 동시에 불발된 정치적 가능성들을 찾아내는 곳이기도 하지요.

현시원
정 감독의 작업을 보면 몽타주와 파편적 이미지로 과거를 다루고, 인터뷰 대상도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기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재판장과 놀이터와 같은 모습, 마치 어른과 아이의 모습으로 섞여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이 인터뷰를 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어요. 왜 정 감독에게 인터뷰를 잘 응해줬을까 싶더라고요. 자신감 있어 보이는 젊은 사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애호인가 했고, 남자가 아닌 여자 감독이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작품으 로 보기에는 매우 쉽게 돌진하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촬영에 이르기까지 매우 어려웠다고 하고요. 휘발되는 뉴스와 다르게 예술과 학문 간에서 탐구하는 지점이 있구나 싶었어요. 정윤석 감독 영상 스크리닝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젊은 세대들의 웃음에 관해서 한 40대 여성 관객이 질문을 했는데, 80년대 말에서 90년대 20대를 보낸 들에게는 <논픽션 다이어리>가 당시 상황을 픽션처럼 다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겠죠.

김홍중
<논픽션 다이어리>에 나오는 사건들은 아마도 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전혀 리얼리티가 없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폭격을 맞은 것도 아닌데 (삼풍) 백 화점이 맥없이 무너지잖아요. 예를 들어 할리우드 영화에 그런 장면을 넣으면 관객이 항의를 할지도 몰라요. 너무 맥락이 안 맞는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런 ‘리얼리티 없음’이 리얼리티였 던 시대를 겪은 사람들에게 그 사건들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 실재이기도 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아직도 낙성대역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로 타지 못해 요. 일종의 공황장애 같은 거죠. 사실 사건이 있었어요. 예전에 언젠가 아침의 만원 지하철을 타고, 구석에 밀린 채 바로 그 구간을 지난 적이 있었어요. 너무 번잡해서 발을 디딜 틈도 없 이 출입구 창문에 얼굴을 댄 채 가고 있는데, 기차가 멈췄어요.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데, 창밖으로 지하철 벽이 앞에 보이는 거예요. 기차의 차체와 벽 사이에는, 그 당시 내가 느끼기 로는, 10센티미터도 안되는 공간 밖에는 없었어요. 밀폐된 곳에 수많은 사람들에 밀려 구석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기차 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구요. 대구의 지하철 참사가 떠올랐어요. 어딘가에 불이라도 나면? 나는 사람들에게 밀려 압사당하겠구나.....뭐 이런 생각들......그 일 이후로 저는 신경증이 하나 생겼어요. 낙성대에서 사당으로 넘어가는 2호선은 지금도 타지 못해요.

재미있는 건 나중 에 깨닫게 된 것이긴 하지만, 그 전 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황우석 박사의 논문 위조 사실이 뉴스에 보도되었던 것이에요. 제가 사후적으로 그 둘을 연결시켜보니까, 이런 스토리 가 나오더라구요. 그 전날 제 마음 속에서 정신적 의미의 거대 건물들이 붕괴한 것이에요. 서울대 교수의 저 기념비적 프로젝트가 허구라면, 무엇이 진실인가? 한국 사회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가? 지하철은 과연 우리를 안전하게 데리고 가는 장치냐? 우리 사회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기초적인 펀더멘털(fundamental)에 대한 불신과 붕괴가 연결되면서 막연하고 일반적인 공포증이 생기더라고요.

<논픽션>에서 카메라가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 들어갈 때, 그 장면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어요. 언제 어디서 뭔가가 터질지 모른다는 사회를 살았던 거죠. 우리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리얼리티 없는 사건들이 2000년대에 접 어들면서 많이 사라졌고, 해서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90년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의아해 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제 경우에는 기초적 신뢰의 붕괴가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갖는 존재론적 안전감을 침식시켰다고 생각하고, 몸과 마음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해 요. 이렇게 보면, 세대 간의 차이는 상처의 차이인 것이죠. 6.25를 겪은 세대는 그 이후 세대 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지 않겠어요? 그냥 떠올리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는 그 런 것들 말이죠. 그래서 망각과 기억이 쉬운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기억하는 것 자체가 생존의 위협이 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용기 있게 기억을 불러내어 직시하라는 말이 그런 자에게는 폭력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미묘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현시원
'상처의 차이'라는 말에 공감해요. 만약,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는 존재라면 서로를 이해하려 는 노력도 없을 텐데, 상처라는 게 부조리하고 힘들긴 하지만 필연적인 것 같고. 정 감독의 작품도 사망한 살인자(지존파) 보다도 남아서 사건을 해결하고 재판해야하는 사람들의 상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처를 듣는 경험은 이미지에 대한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 증언과 인터뷰로서도 작품이 지니는 가치가 크질 않았나 해요.

세대의 차이는 '상처'도 그렇지만, 전 관객이 무엇에 반응해서 영화를 보고 웃는가도 흥미로웠 거든요. 80년대 민중미술의 이미지들은 '구원할 수 있다'는 제스처가 웃기기도 한 거예요. 그런데 90년대 나의 상황들, 나의 반응, 웃음 포인트에서 웃음이란 게 저에게는 사회를 의식하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 되었고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는 저항이 될 수도 있다고 나이브 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2000년대 후반은 사회가 너무 파편화됐다고 할까요? 황우석, 대통령 의 자살, 88만원 세대 등 웃음이란 게 공통된 감각이 되긴 불가능해진 것 같고요.

그런데 <논픽션 다이어리>를 보고 웃음이라는 것이 되살아났어요. 그 작업이 웃겼다는 게 아니라, 종교적 측면과 결부될 때 웃겼어요. 1950년대 생이나 60년대생 등과 같이 봤더라면 다른 포인트에서 웃었거나 분노했을 거라 생각해요.

김홍중
세대 간의 차이를 실체화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소통을 넘어설 만큼의 차이는 아닌 것 같아요. 세대 간 차이는 소통을 촉발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현시원
세대 간 차이는 1:1로 만나면 가능한데, 집단으로 만나면 외면하고 싶은 거대한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사회학적으로 보면 집단적 행동의 패턴에서 가능성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정 감독 말에 의하면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이니까 사람들이 반응하는 거 아니겠느냐" 하더라고요. 지존파 사건은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 실체는 잘 몰라도 대충은 아는 이야기가 맞아요.

김홍중
그렇죠. 모두가 다 아는, 유행가 같은 거죠.

개인과 집단이 느끼는 리얼과 리얼리티1)
1) 사회학자의 촉과 관찰로서, 과연 한국의 90년대와 2010년대는 얼마큼의 차이가 있다고 보시는지 궁 금합니다. 90년대를 거쳐 2010년대를 살고 있는 개인에게 이 20년이라는 시간은 무수히 많은 단절과 변화의 과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개인으로서, 또 집단(국민 또는 시민 또는 네티즌)으로서 이 20년 동안 사회의 흐름은 이끌어온 원동력과 그 힘의 방향은 무엇이었다고 보시는지요.
해당 내용 키워드: 트위터와 리얼리티/ 혼돈 속 예술과 학문의 역할?/ 신뢰없는 묵시록. 신자유주의. 위험사회. 혼돈. ᅳ삶으로 들어온 포스트모더니즘. 그 결과는 사회의 온갖 부정적 현상. 미래없음. 삶 전 체가 위험. 가장 강력한 신자유주의 가장 처참한 양극화. 브레이크 없음. 그래서 정치가 중요함. 삶의변화 제어 가능하니까.

현시원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에서, 선생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싱귤래러티singularity’를 뽑아내는 게 예술가가 해야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나오는 『F』 10호의 우정을 주제로 한 대담을 보니까, 대학교 때 당구장 많이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90년대를 거 쳐 2010년대를 살고 있는 개인에게 이 20년이라는 시간은 무수히 많은 단절과 변화의 과정이 었으리라 생각해요.

김홍중
그때 세미나를 많이 했는데, 지금보다 당시는 훨씬 더 모여서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 90년대 중후반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현시원
저도 90년대 말 학번으로 대학교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 전국대학생기자연합회를 탈퇴하는 게 당시 이슈였어요. 그밖에도 학교 신문사는 많은 단체, 집단을 탈퇴했어요. '비상연락망'을 다 끊고자 했던 것 같아요. 학교와 친구들의 특성도 있었겠지만, 작은 그룹핑이 성했던 것 같아요. 그에 반해 요즘 젊은 친구들은 더 작은 모임들로 단자화된 거 같아요. 또 대표적으로 트위터의 속도도 따라가기 힘든데, 그 안에서 어디까지 속살을 보여주는지, 리얼리티의 결이 있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도 궁금해요.

김홍중
저는 두 개의 쟁점/초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의 문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리얼리티라는 문제이구요. 사실 10년 단위로 세상이 변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학자의 시간감각이지만,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전대미문의 변화가 있었다고 진단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크게 세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가속화입니다. 예전에는 사회라는 게 한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얘기됐는데, 이제는 그런 사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한국 중국 브라질 미국 사이에 어 떤 또 다른 사회공간이 있어서 자본과 노동 먹거리 등 온갖 문제가 그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여요. 매우 글로벌한 차원의 사회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의 문제를 풀기 위해선 한국만 들여다보는 것이 의미가 없어요. 신자유주의는 결과적으로는 경제논리가 정치 사회 문화 논리를 압도해나가는 현상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있어요. 20세기까지 단 한 번도 경제 논리가 사회 부문 전체를 지배한 적도 없고, 국가를 넘어선 또 다른 사회적 실제가 국가 내부 일보다 중요한 적도 없었는데, 이 두 현상이 중첩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 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학자들이 많이 얘기하는 후기근대성의 문제입니다. 19세기적 근대가 초기 근대라면, 20세기 후반은 그 근대성이 완전히 심화되어 근대로부터도 다시 한 번 근대화되는 현상이 발생해요. 대표적인 실례로 '위험사회risk society'의 도래나 개인화를 들 수 있어요. 더 이상 집합적 정체성이 유효하지 않고, 개인이 모든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는 현상, 그리고 전 통과도 완전히 단절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초기 근대까지는 전통과의 연결이 살아 있었는데 이제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합리화되어서 전통적인 지식이나 가치가 소멸해버린 사회가 나타나고 있어요. 그래서 그 결과 개인이 자기 삶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온거죠. 이제 죽음까지도 책임지겠죠. 태어나는 것은 책임 못 지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지적해야 겠죠. 관념, 고급예술, 소수의 예술가들의 창작문법이었던 포스트모던적 흐름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의 일상으로 스며들어 와 있 어요. 그래서 거대서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취향이 다양화되고 탈중심화되는 현상이 복합 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세 트렌드의 복합적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의 사회 풍경인거죠. 모두가 불안하고 미래가 없는 사회, 유일한 삶의 책임은 국가나 사회가 아닌 '나'라는 주체가 짊어져 야 하는 사회가 그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삶 전체는 위험이 되었고요. 그런 큰 변동이 빠른 속도로 글로벌하게 일어나는 소용돌이 안에 한국 사회가 첨단적으로 휘말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가장 강력한 신자유주의, 가장 가혹한 생존경쟁, 가장 처참한 양극화 가 진행되고 있어요.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급행열차를 타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유럽, 미국, 일본은 커녕 아시아의 다른 사회와 비교해도 매우 급진적인 바가 있어요. 세계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미래로 도약해 나가는 사회는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현시원
급행열차라는 표현이 와 닿습니다.

김홍중
그렇죠. 통제수단이 별로 없는 것이고. 이런 문제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넓은 의미의 '정치'에 삶의 변화 가능성을 부여하려는 생각이 우리의 현실 진단에 반드시 적실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정치도 부분적으로밖에는 이 브레이크를 잡을 수가 없거든요. 물론 한국 사회는 비교적 정치의 힘이 강력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대화되고 포스트모던으로 나갔기 때문에 정치•경제•문화•사회•의료•학문이 모두 다 쪼개져 있어서 어느 것도 주도권을 잡고 있지 못하거든요. 물론 그중에 유일한 예외는 경제겠죠. 그런데 경제도 마음대로는 못하거든요. 어느 누구도 이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방향타를 독점할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사회가 진화해가고 있고, 그 안에서 정치라는 것은 그것이 현실정치건, 생활정치건, 저항이건 사회 전체의 흐름을 움직이 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좀 더 명확히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바꿀 수 있는 주체가 보이지 않으니까 어두운 거예요.

현시원
이런 상황에 비추어보면, 정윤석 감독은 사회의 변화에 대해, 현실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아직 긍정적인 편인 거죠. 그러니까 말을 거는 것일 테고요. 한 줄기의 빛을 바란다고 할까요. 시대착오적인 것 같기도 해요. 저는 매우 오랜만에 "할 수 있다"는 제스처를 봤거든요. 다 끝 났다고 생각했는데.

김홍중
예술가니까요.

현시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나 학문이 해결책을 내놓는 완벽한 주체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 혼돈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속도를 늦추는 걸까요, 이 상황을 직시하는 걸까요?

김홍중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회학자의 말을 빌리면, 현대 사회는 "중심도 정점도 없는 세계"에요. 중심이 있다면 중심을 바꾸면 되고, 정점이 있다면 그 정점을 타격해서 점령해버리면 돼요. 그런데 많은 중심이 존재하며, 모두가 정점으로 기능하는 방식으로 사회 가 운영된다면 문제가 복잡한 거죠. 한 가지 실례로, 환경 문제 같은 것이 그렇지요. 현대사회 는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철저히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도덕하거나, 그런 현상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와 책임을 분산시키고 있기 때문이에요.

법은 환경 문제를 불법/합법으로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환경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행위라 해도, 실정법으로 어떻게 할 수 없으면 그 문제 를 해결할 수 없어요. 정치는 정치의 시간 속에서만 문제에 접근해요. 즉, 정치가는 5년이라는 집권기간의 맥락에서만 모든 문제들을 판단하기 때문에, 문제 자체가 5년 이상의 시간을 요하 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인 것이죠. 경제 영역에서는 결국 이익과 손실의 논리만이 중요할 뿐이에요. 기업이 파산해가면서까지 환경 문제에 애를 쓸 이유가 없단 말이죠. 사실 이렇게 쪼개 진 중심들은 정말 중요한 문제라 할지라도 각자의 논리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저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주체는 '시민'이라는 막연한 주체밖에 없어요. 근데 이들은 모이지 않아요. 바빠서.

오늘 신문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에 저장된 막대 한 오염물을 태평양에 쏟아 버리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무슨 권한으로? 태평양 전체가 일본 것도 아닌데? 그 이후의 엄청난 문제들에 도대체 어떤 책임을 지려고 그런 결정을 내렸단 말이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문과 예술이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술가는 총체성의 시각을 더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선 종교인과 가깝다고 봐 요. 종교인과 예술가는 현실 세계 자체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환경문제의 심각성 을 더욱 크게 느끼고, 그에 대해서 원론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거죠.

예술과 종교는 보편적인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개인적 이해를 떠나서 인류와 생명전체의 입장에서 발언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들의 발언을 중심으로 사회가 쉽사리 재편되거나 변화하지는 않겠죠. 예술 작품이 사회의 논리에 여러 단계에 걸친 연쇄작용을 통해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어떤 정치가나 CEO나 법조인이 예술 작품을 보고 무엇을 곧바로 바꾸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기적을 꿈꾸는 일과도 같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게 종교와 예술과 학문이 처한 굉장히 위축된 상황이 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예요. 예수님도 처음에는 12명에서 시작한 거잖아요. 하지만 빠른 시간에 사회와 세상이 직접적으로 바뀐다는 생각에는 저는 회의적이예요.

논픽션다이어리-누구의 일기인가. 이름없음에서 오는 다양성?

현시원
정말 사회를 '바꾼다'는 말의 의미가 매우 축소된 것 같아요. 요즘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 문 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내 이해관계를 떠나서 무언가를 이야기해보려는 시도들이 현실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있는 것 같아요. 정윤석 감독 외에 최근 옥인콜렉티브가 작업한 박정근 씨의 사건에서 출발한 영상 작업 <서울 데카당스(Seoul Deca dence)>(2013)을 인상적으로 보았어요. 옥인콜렉티브의 출발도 멤버 중 한명이 철거되는 옥인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고 이번 작업에서도 박정근이라는 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25세의 젊은 한 남자가 영상에 직접 출연해 연극배우에게 실제 법정에 갔을 때 어떻게 판사 앞에서 호소력 있게 얘기할 수 있는지를 교육시키는 내용이거든요.

픽션과 논픽션이 섞여 있는데, 그런 점에 서 <논픽션 다이어리>라는 정윤석 감독의 작품 제목도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이름 없는’ 느낌이거든요. 아무것도 지칭하지 않는 것. 맹숭맹숭해서 누구를 홀리지도 않고요. 옥인 콜렉티브의 박정근 작업도, 그들이 한 일은 단지 박정근씨와 연극배우를 불러놓은 것이 전부 이기도 해요. 자료화면을 채집하고 지존파 사건의 직간접 체험자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따는 일이고요. 박정근씨는 트위터나 전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입이 없는 사람도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옥인콜렉티브는 자기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말들을 꺼내게 했다는 점에서, 사회부조리를 다루었다는 것을 넘어, 인간의 다층적 측면을 보게 하는 작업이었어요. 4대강, 외국 노동자, 두리반 등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들이 당장 문제해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의의가 있다고 보거든요.
저는 처음 영화를 보고 <논픽션 다이어리>라는 제목을 바꿔야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어요. 블로그 이름 같은 느낌. 결과물이 아닌 5년간의 리서치 상황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매우 솔직한 작업 명칭이긴 한데, 순전히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폭발력이 있는 제목은 아니거든요.

김홍중
그럼 누구의 다이어리라고 생각하나요? 감독의 다이어리인가요?

현시원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군인을 보면 어릴 때 위문편지를 썼던 아저씨가 어느새 어린 동생들이 되어 있잖아요. 지존파도 뉴스 자료 화면을 보니까 너무나 어린 거예요. 논픽션 다이어리라고 하면 사지가 막 찢긴 그런 느낌이 없어요. 정윤석 감독의 다이어리에서 시작했지만 지존파의 일원, 유일하게 등장한 여성(수녀님과 고발자), 나중에 수사반장님의 거부할 수 없는 육성, 끊임없이 나오는 죽음의 이야기들 등을 감안하면 좀더 힘 있는 제목으로가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이름 없음’에서 오는 다양한 가능성도 봐야 한다고 봐요.

김홍중
정 감독 만나서도 이야기를 했어요. 더 틀을 빼는 게 어떻냐고. 감독이 하고픈 말들을 더 빼도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이름도 논픽션다이어리처럼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르는 오픈된 상태,또 변할 것 같은 만화경같은 느낌이 좋은거니까,고정된 틀을 하나둘씩 더 빼도좋겠다 했어요.

리얼과 리얼리티 / 나는 타인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취하는가

현시원
제 경험담에서 출발하면, 2010년에 기획했던 전시가 <지휘부여 각성하라>였어요. 이 문장은 신문에서 본 거였고, 실제 이 글을 쓴 이는 상부에 각성하라는 문제를 제기하다가 퇴직을 당 한 자였어요. 그걸 보고 현실의 여러 소스를 기획자로서 가져오게 됐는데, 리얼리티를 취하는 방식에 늘 고민이 있어요. 내 것이 아닌 남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취해야 하는가 하는 거죠.

항상 수많은 영향관계 속에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져온 저 문장은 단편적인 ‘취함’이 었던 것 같아요. 실존 인물의 자세한 상황을 본 것은 아니었고요. 리얼리티를 취하는 방식과 어투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여러 작가들의 방법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후에도 젊은 작가와 나이 많은 작가를 정치, 사회적 현실 태도로 한 데 같이 묶을 수 있을 까-하는 문제를 고민해요. 다른 하나는 어투의 방식을 다루는 거였는데, 저는 타자와의 관계 가 중요한 어투의 방법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타자는 동료작가, 관람객, 동네사람일 수도 있는 거예요. 2010, 2011년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 매우 타자 지향적이예요. 관람자 와 동네사람들을 많이 참여시키려 하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콜렉티브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아까 말했던 옥인콜렉티브만 봐도, 주거문제를 이야기는 하지만, 그 현장을 방문하고 기록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슬로건이 없어요. “이 아파트를 지켜야해!”와 같은 슬로건 없이 어떻게 리얼리티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게 매우 저에게는 미술에 대한 불신을 만 들기도 했어요. 기획자로서 수많은, 슬로건 없는 목소리들을 어떻게 묶어낼 수 있을까 싶었고 요. 그래서 어쩌면 동시대를 향한 관심은, 매우 산만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파편들을 갖고 놀 듯이요. 오늘날 작가들의 어법도 개인의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 만드는 어법을 따라가면 서 살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여전히 그 어법이 어떻게 정리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김홍중
거기에 대한 답이나 딱 맞는 코멘트는 아닐 수 있겠지만, 저는 리얼리티와 리얼을 구분하거든요. 리얼은 리얼리티가 깨지면서 나타나는 무언가인 것 같아요. 즉 리얼리티는 리얼이 형식을 갖춘 것이죠.

90년대 이후로 리얼리티라는 것은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 같고,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개념이 ‘리얼’인 것 같습니다. 가령, 지젝이 얘기하는 테러리즘 같은 거죠. 지존파도 사실 그렇고요. 세상을 보는 방법이 두 개가 있는 거죠. 세상을 리얼리티로 본다면, 그건 천천히 접근하면서 변화시켜야하는 무엇이에요. 복잡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세상을 리얼로 보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폭력적인 무언가가 한 번에 분출되어 확 바뀌어 버리는 것이에요. 프랑스혁명이 리얼의 감수성이고, 미국혁명이 리얼리티의 감수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근대 예술은 리얼이거든요.

예술은 현실을 잘 사는 것도 리얼리티를 잘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예요. 예술은 사람들이 애써 만든 리얼리티를 확 부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처참함이든 아름다움이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예술은 어쩔 수 없이 리얼리티에 대해서는 무용성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뛰어난 예술작품도 나의 소소한 일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해요. 오히려 그런 일들 자체를 할 수 없는 파국의 순간에 내 삶의 지평을 흔들어버리는 효과를 가질 수는 있지만요.

그래서 저는 예술은 본질적으로 리얼리티에 대해서는 파괴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게 예술가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그 파괴는 예술가의 삶을 계속 정지시키고 문제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예술가가 정작 리얼리티로 편입되는 순간, 예술적 가능성은 슬프지만 소진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리얼을 체험한다는 것은 파국의 체험이기 때문에 인생의 사건, 사고, 질병, 사랑의 실패, 고통, 죽음과 같은 실존적 체험, 혼돈의 체험, 정신적 상실의 체험과 연관이 있는 거지, 매일 밥 먹고 살아가는 일상적 세계와는 깊은 연관이 없어요. (근대) 예술은 리얼리티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리얼을 위한 순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것입니다.

작품이 되는 순간 리얼리티를 교란시키거든요. 사람들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오거나 이데올로기를 흔들어버리지 못하면 작품이 아니고요. 작품이 되는 순간은 리얼을 건드리기 때문에 정치적인데, 문제는 예술이 일깨우는 정치성은 다시 리얼리티 안에 자리를 잡거나, 아니면 리얼리티에 의해서 다시 뒤덮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끝없이 피흘리는 예술작품은 살 수도 볼 수도 없거든요. 옆에 두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는 아까 말씀하신 리얼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 대답불가능한 질문이라고 봐요.

모든 작가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통제할 수 없겠죠. 왜냐하면 통제가 된다면 리얼이 아닐 테니까요. 그러니까 작가와 리얼의 관계는 그들을 살리면서 죽이는 관계인 것 같고, 결국 작가는 리얼과 의 관계를 수동적으로 규정당하는 존재가 아닌가 해요. 의도가 좌초하는 지점, 작가의 뜻이나 메시지가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지점, 그게 예술이 다루는 성격이나 매체에서 올 수 있겠지 만, 궁극적으로 작가는 수동성에 노출되고, 그 수동성이 어떻게 보면 정치적이고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미스테리한 가능성이라고 봐요. 그래서 <논픽션다이어리>도 좀 더 수동성을 개방했 으면 한 거예요. 왜냐하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오면서 주체성이 드러나는데, 선택의 강도 를 줄이고 작가가 다루는 대상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가...

현시원
저도 작가들은 자신의 수동성을 내어주면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할 수 있어”라기 보다는 90년대 2000년대 작가들은 결말이 없든 타인의 참여하게 만들든, 내가 다 할 수 없다는 어떤 실패의 감각에서 작업의 추동력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김홍중
저는 비관주의가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가능성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80 년대 같으면 넌 너무 허무주의/패배주의적이야 라고 얘기했을 법한 태도들이, 이제는 정치적 으로 긍정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황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환경문제를 생각해 보면, 묘한 역설이 존재해요. 오히려 지극히 보수적인 감수성이 오히려 진보적으로 작용하는 거죠.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은 바꾸지 말자는 게 보수주의거든요. ‘삽질 하지마, 이윤 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할래’, 라고 하는 것 말이죠. 아니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진보가 아니야,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고통스러워질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정치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자원이 되는 세계가 왔다고 생각해요.

사실, 19세기 이래 예술가들만큼 그 어두운 세계에 깊게 들어간 사람이 없잖아요. 뛰어난 예술가야말로 좌파 진보, 우파 보수의 구분이 없는 곳으로 들어갔고, 그 세계 속에서 위험한 발언도 하고요 (니체). 이는 20세기의 좌파적, 진보적 관점에서 봤을 땐 망언에 불과할 수 있지만, 21세기 상황은 이를 다시 보게 만들고, 그런 의미에서 실제와 예술이 맺는 운명적 관계도 좀 더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저는 예술이 리얼리티에 기능하는 방법 쪽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되, 경제 체계나 정치 체계에 의해 전용되지 않는 방법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공공성’이라는 개념이나 ‘사회적’이라는 개념의 의미가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될 거라고 봐 요. 그래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 이냐 했을 때, 판을 전체적으로 다시 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보수주의나 패배주의를 끌어안고 그것을 다시 가치화시키고, 좋은 리얼리티를 만드는 구성적 예술 혹은 기능적 예술 도 훌륭하다고 인정해줄 수 있는 비평의 아량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마 예술은 고사하고 말 거예요.

현시원
예술이 공공성, 사회학과 만나는 건 한국 사회에서는 이젠 공공연한 팩트fact인 것 같아요. 공공디자인, 공공미술에 포섭되지 않으면서 다른 접점들이 분명 많이 만들어지고 있을 테고 그 사이를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김홍중
오히려 그런 문제는 저보다도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와 같이 예술장 안에서 정말 더 진지하 게 고민하시는 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봐요.

사회학이 탐구하는 현실, 예술이 탐구하는 현실

현시원
요즘 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를테면 예술에 대한 수많은 토크가 그래요. 예술에 대한 대화요. 단순한 미술 비평은 아닌 것 같고, 트위터의 짧은 문구, 예술을 생산하는 작가 이외에 예술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흥미롭고, 매우 단편적인 단상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보고 반응해야 하는가 생각해요. 이런 목소리를 보면 예술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도 느껴지고, 감동을 잘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이든 간에 코멘트의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한 마디씩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미가 없기도 하고 시끄럽죠. “과연 예술, 시와 소설, 미술은 현실에서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극하는 것일 수 있을까요?” 라고 여쭌 것도, 예술에 대해서 코멘트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궁금하고, 거기에서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에요. 아까 극장에서의 집단 관람 얘기도 나왔지만 더 이상 혼자 소설을 읽거나 전시장을 가거나 할 때 개 인적 경험을 알 수가 없어요. 즉, 예술을 체험하는 개인적 경험은 매우 귀중한데 사회적으로 는 도드라진 이상한 경험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사람 특유의 에너지가, 전시를 봐도 보이거든요.

올 봄에 본 기획전들을 보면 작가들이 작업을 만드는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 영상을 매우 많이 봤어요. 자료 영상이 설명을 해주는 거죠. 그걸 보며 느낀 것이, 사람들은 매우 즉흥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고, 예술을 매우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 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 에너지에서 무언가 생겨날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하거든요. 그래서 예술이 우리를 자극한다기 보다, 예술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에 주목해보고 싶어요. 정윤석 감독의 경우도, 감독이 기대하는 게 작품의 완성이 아니라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미칠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마음 같거든요. 작업의 완성 이후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는데, 각 작업 이후의 파편적 반응들을 어떻게 엮어낼 수 있을까가 제 질문이에요.

그리고 이런 파편적 경험에서도 예술에서 내 마음을 자극하는 게 있다면, 저는 추상화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해요. 제가 왜 그것을 좋아하고 어떤 지점에서 감동하는지 논리정연 하게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작업에 감명을 받는 것 같아요. 그걸 저는 추상화의 과정이라고 보고요.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예술을 좋아하는 동시에, 설명을 듣고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관객들 사이의 긴장감에서 아직 저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 같아요.

미술은 여전히 현실을 자극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이 뭔지 잘 모르겠고, 미술은 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질문을 계속 던지게 돼요.

김홍중
재미있는 얘기인 거 같습니다.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이런 거죠. 저에게는 미술이든 문학이든 넓은 의미의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하나의 위안이에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 어떤 위안이냐면, 그게 아마 예술의 원체험이란 생각도 드는데요, 죽음에 대한 위안인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겐 리얼이예요.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사적인 언어로 누가 묻는다면, 리얼은 죽는 것, 내가 없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경제활동 하는 것은 리얼이 아니에요. 그냥 리얼리티예요. 그런데 그 리얼리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죽음인데, 그 죽음이 나의 본질이라고 느껴질 때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데?” 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이 예술적 체험인 것 같아요.

제가 종교가 없어서일 지도 모르지만, 예술은 제도 종교보다 더 종교적일 때가 있어 요. 그 점에서는 예술이 인간학적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위안을 주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냉정하게 보게 하면서, 동시에 죽음에 대한 슬픔을 이기고 살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예술이라면, 나는 예술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데, 정작 가만히 보면 예술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선 그들에게는 종교가 있을 테고, 예술에 의해 위안을 받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죽음과 대면하 는 것이겠죠. 죽음에 대한 가치는 문화적인 것이고, 문화는 변하는 거니까 죽음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적어도 저에게 죽음은 내면적인 현상인 것 같아요. 병원에 가서 죽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죽음을 죽는 거죠. 릴케의 말을 빌면, 병으로 죽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 죽는 것입니다. 병도 사고도 아닌 ‘죽음적’인 무언가가 나를 죽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병 걸리기 이전에 이미 죽었을 수도 있는 거예요. 죽음 다음에 살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게 죽음이란 공간이 내 내면에 있고, 그걸 열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예술가가 유일하다고 생각하 거든요. 그래서 기쁘게 살 수 있는 거죠. 그게 삶에서 가장 리얼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술이 필요한데,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런 말들이 공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죠.

현시원
저도 매우 공감해요. 그리고 이건 예술 지상주의는 아닌데, 교회를 가보면 모두 똑같이 주기 도문을 외우지만, 결국은 자기만의 기도 방식을 찾는, 자기 말의 어법을 찾는 것처럼 예술도 자기만의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요. 이 파편 속에서도. 정윤석 감독 작업은 위안과 공포 를 같이 주는 것 같아요.

김홍중
그렇죠. 작품을 보면서 “한 사람으로서 내가 산 시절이 저런 시절이었구나”를 느끼고, 그런 시절도 살았는데 이런 상처를 갖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하며 형이상학적 위안을 얻는 거죠. 그런데 병이나 상처나 아픔이라는 건 나을 수 없을 수도 있고, 인간이란 건 원래 그런거야 라고 죽음의 면전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은 때가 있기도 하지요. 결정적인 순간에 거기 너무 빠 져들어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자기성찰의 능력이나 방법적 자학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기를 구원하는 능력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훈련은 예술이 가능케 해준다고 생각해요. 실제 저도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듣는 음악이 있거든요. 그런 음악들은 저에게는 절대적 기능을 해요. 결국 그런 작품은 친구죠. 이러한 사적인 의미가 공적으로도 충분히 확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건 고통의 연대일 수도 있고요. 양가적이죠. 그게 어쩌면 더 이상 가능 하지 않을 새로운 삶이나 사회가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그럼 그들은 어떻 게 살아가고 죽어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사회를 체감한다는 것

현시원
현실에서 경험하는 사회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 힘겹게 느껴집니다. 다시 사회와 예술의 관계로 돌아가는 질문인 셈이네요.

김홍중
사회를 꼭 체감해야 할까요? 저는 학생들에게 ‘사회를 비추는 거울은 없다’고 가르쳐요. 그런 거울이 있다면 그 거울은 깨져있겠죠. 예술가들이 사회를 잊은 상태에서 사회를 작품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을 더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라는 게 있는 그대로 작품 안으로 기어 들어오면 작품을 잡아먹거든요. 정치도 마찬가지고요. 사회 정치 이데올로기 철학 등이 작품으로 들어오면 감각이나 작품성을 갉아먹는단 말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 을 숨겨서 들여와야 하는데, 이 숨기는 것은 의도적으로는 안 돼요. 묻혀와야죠.

그래서 저는 ‘기생’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사회 정치 윤리 등은 작품 안에 기생해야지, 작품의 색을 규정하는 실체적인 무엇으로 나타나면 안 된다고 봐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야 해요. 그러려 면 작가는 사회 정치 윤리를 대상으로 다루면 안 되고, 거기에 물들어야, 병들고 오염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작품이 사회 정치 윤리를 기생충으로 품고 있는 병든 숙주가 되어야지, 작가가 대상으로 조작하는 순간이 오면 사회 정치 윤리는 작품으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작품을 일그러뜨리는 것으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오히려 방법론적으로 그것을 차단하는 게 낫다고 봐요.

현시원
매우 재미있네요. <논픽션 다이어리>는 사회를 일정 부분 대상화시키는 것 아닌가요? 90년대 벌어졌던 한 사건을 추적하고 벗겨내면서요.

김홍중
그런데 충분히 죽였기 때문에 (저는 더 죽였으면 좋겠는데) 아까 말한 수동성과 연결이 되는 데, 오염됐을 때, 그래서 작가가 위험한 상태에 있을 때 좋은 사회적 정수가 작품 안에 스며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건 근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어서 문제적일 수 있어요.) 그리 고 그 기생충, 즉 숨겨져 있는 사회 현상과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은 관객과 독자에게 있어요. 그걸 믿어야 해요. 그래서 그들을 믿어야 해요. 이 독자와 관객은 동시대인일 수도 100년 뒤의 사람일 수도 있어요. 미지성을 가진 독자와 관객을 내 오염을 뚫고 봐줄 수 있는 이들이라고 믿지 않으면, 절대 못하겠죠. 작가는 그들을 가르치려고만 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그들을 믿어야 해요. 그러므로 질문으로 돌아가면, 결국 사회를 체감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오히려 사회에 오염되고 사회에 의해서 병들되 빠져나올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시원
여러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예술과 사회가 어떤 입장이나 생각이 정리돼서 말하긴 힘들 것 같고, 오늘의 대화에서 느낀 건 어떤 어제와 다른 ‘경험’이에요. 최근 일본에 갔다가 야네센 지역의 한 절 입구에서 18세기 도쿄에서 코믹스토리를 쓴 사람이 잠들어있는무덤 현판을 봤어요. 절 안에 그 작가가 그린 그림이 있다는데 1년 중 오직 8월에만 보여준다 고 해서 못 보고 그냥 왔어요. 작품을 열어 보지는 못 했지만 그때 뭔가 제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