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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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개인적 체험은 지금 젊은 작가들이 자기 작업의 배경을 설명할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학생들에게 이런 말들을 쓰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 단어들이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발되고 있어서 그것이 지칭하는 영역이 너무 넓어졌고 무엇이든 그 범주 안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더 이상 아무것도 지칭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그 용어를 써야 한다면 이제는 그 일상이 어떤 특정한 일상인지, 그 체험이 어떤 특정한 체험인지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평범하거나 사소한 일상에 대한 미술가들의 주목은 80년대 말, 90년대 초 사이에 일어난 이른바 거대담론에 대한 반성의 결과다. 그것은 그때까지 미술의 시야 밖에 있던 일상을 미술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미술과 미술 아닌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추상적인 예술적 이념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구체적인 삶으로부터 예술이 출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전환이 오늘날 한국미술의 역동성과 다양성의 토대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가 잃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체험의 지평선 너머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현실에 대한 시야이다. 특히 사회적 가치와 역사에 대한 관점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격동의 한국 사회 속에서 '평범하고 사소한 개인의 일상'이 미술의 지배적 키워드가 되었다는 것은 주목해볼 만한 현상이다. 미술이 일상의 이름으로 미술의 경계를 넓히는 동시에 다시 '개인'의 제한된 공간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윤석의 작업에서 우선 주목되는 것은 그가 이런 환경 속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현상들을 작업의 지속적인 주제로 다루어왔다는 사실이다. 2007년 <우리나라에도 백악관>, 2008년 < Looking for Him >, 2009년 <불타는 신기루>로 이어지는 그의 영상작업들은 동년배 작가들에게서 보기 드문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보여주며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관객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한국사회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친다. 그가 일상을 다룬다면 그것은 한국의 사회와 근현대사의 일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구사하는 작업의 형식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촬영하는 영상 외에도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 미디어 소스들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섬세하고 재치 있는 영상/음향 편집에서 나타나는 주목할 만한 그의 능력은 여러 차례 독립영화와 실험영화제의 수상을 통해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정윤석의 작업은 미술과 영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비디오아트와 뮤직비디오와 유튜브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독자적인 영상작업의 형식을 구축하는 열정적인 탐색의 과정에 있다.

정윤석은 <우리나라에도 백악관>을 비롯한 초기의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업을 되돌아보며 형식적으로 수사의 세련됨을 지향하면서 내용을 추상화시켜왔거나 반대로 현상에 집착하느라 주장에만 그쳐버린 것은 아닌지 자문하고 있다. 내용과 형식, 사회적 현실과 예술적 현실 사이의 충돌과 불화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이번 전시 출품작인 <논픽션 다이어리(Nonfiction Diary)>는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작업이라고 한다. 그가 이 작업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현명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안규철(미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