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를 깎는 쇠들의 향연, <청계천 메들리>

2000년대 초반 청계천 공구상가를 주목했던 진보적 미술가 그룹 <플라잉시티>는 자신들의 작업노트에서 상가주인에게 들은 아래와 같은 일화를 밝힌다.

어느 날 경찰서에 붙잡혀 갔다. 심문의 요지는, "왜 허가 없이 선풍기를 만들어서 파느냐?"는 것이었다. 난, "이건 선풍기가 아니다. 이게 선풍기처럼 보이나? 내가 만든 것은 바람을 일으키는 기계일 뿐이다."

80년대 민주화 이후 표출되었던 공동체의 경제적 성장 욕구와, 2000년대 그 이면에 감춰진 허위의식에 집중했던 <플라잉시티>는 외견상 무감각하게 보이는 이 청계천 공구상가거리에서 카오스적 질서를 발견하고 지난 날 "도면만 가져다주면 탱크도 만들어준다"는 그들의 풍요로운 자신감을 현재 시점으로 재조명하는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실제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청계천 공구상가는 근대화의 역군을 부르짖던 7-80년대, 모든 것이 가능한 '꿈의 공장'으로 군림하였다. <청계천 메들리>의 박경근 감독은 이러한 굴곡진 시대적 배경과 그들을 주목했던 전위적 예술가들이 펼쳐놨던 맥락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출발한다. 산업화 이후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오늘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애물단지로 전락한 이 현재적 공간에서 감독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몸담은 청계천 공구상가를 빗대어 한 개인의 미시적 역사와 동시대의 역사를 담대히 크로스시킨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다소 낯설은 몽타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청계천을 소개하려한다. 영화 초반 감독 자신의 꿈을 설명하며 몽환적인 느낌으로 출발한 이 영화는 곧 이어 청계천 공구상가를 헤집고 다니는 한 인물을 추격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처럼 꼬여있는 이 공간을 자신만의 영토처럼 헤집고 다니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은 이 공간의 심리적 지도가 얼마나 다층적인지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곧이어 감독의 자전적인 나레이션으로 채워지며 70년대 대한뉴스 필름들, 둔탁하지만 반복적인 기계들의 움직임과 날카로운 기계음들이 시청각을 자극하며 자연스레 이 공간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는 공구상가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겨간다.

이러한 내용적 흐름과 달리 특이하게도 감독은 '쇠'라는 물질성에 집중하려한다. 이 '쇠'라는 중의적인 키워드는 근대 개발의 가장 핵심적인 매개체일 것이다. 실제 청계천 공구상가에는 이러한 '쇠'들을 깎기위한 '쇠'들이 넘쳐나는 공간이지만, 진정 '쇠를 깍는 쇠'들은 아마 거칠디 거친 청계천 공구상가의 남성들일 것이다. 영화 내내 거친 언행과 '개불'과 '굴'을 나눠먹으며 자신들만의 유대감을 자랑하는 모습들을 통해 감독은 거꾸로 근대 산업의 역군의 위치에서 면면히 내려온 그들만의 질긴 생명력을 조망한다

이후 청계천 공구상가 구성원들은 일부는 '디자인 서울'이라는 허망한 구호 아래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서울시의 도시정화 사업과 맞물려 가든 파이브로 이주하게된다. 기존 공간의 총천연색은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무채색의 공간으로 변모하였고 그 곳에서 쌓여왔던 공동체의 끈끈함은 닫힌 철문의 두께처럼 적막함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영화는 패션몰과 작업장 그 사이, 자신의 정체성이 가려진 공간 안으로 입주한 한 업체의 고사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감독의 이러한 응시는 지난 날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근대의 욕망과 오늘날 근대를 실천하는 개인의 욕망을 절묘히 오버랩시키며 '선진'이라는 구호아래 내려온 우리안의 미신을 통렬히 지적한다.

대량생산 시스템은 표준적이고 규격화된 손노동을 요구. 효율성과 합리성의 명분아래 섬세한 전통적인 ‘손기술’은 사장되거나 기술보유자로 제도적으로 유폐되었다. <플라잉 시티, 청계미니박람회 컨셉 중>

오늘날 청계천 공구상가라는 실제적 공간을 총천연색 '풍경화'로 묘사하는 이 영화는 다소 관념적인 나레이션으로 서술하는 감독의 화법과 맞물려 영화의 중간중간 관객의 극적 몰입도를 떨어트린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공간에서 살아움직이는 주체들의 모습들이 그 여백을 절묘히 매꿔주며 자칫 흔들릴 수 있는 영화적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전통적 다큐멘터리 문법을 따르지만 현대 예술에서 시도했었던 영상적 실험들이 넘실거리는 박경근 감독의 <청계천 메들리>는 토건국가로 출발한 동시대 한국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동시에,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가능한 시적허용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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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벌2011 프로그램 노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