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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고은 작가 죽음 이후 문화예술계 전반에 후폭풍이 거세다. 거듭된 빈곤이 한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직 후, 현 정치권에서는 예술가 복지를 위한 법제정을 서두르고 있으며 사회전반에서 예술가의 처우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내보이고 있다. 사실 그녀의 죽음은 오랫동안 관행처럼 내려오던 산업구조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이 비단 특정 예술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위기감을 느낀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 필자들이 모인 사전모임에서 난 다소 당혹스러웠음을 미리 밝힌다. 그녀의 죽음엔 모두 안타까움을 표하지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보안에는 서로의 시각과 미묘한 입장차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구체적 논의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지원사업에서 작가의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 ‘무상급식’과 같은 보편적 안건조차 사회적 갈등으로 표면화되는 이 시점에 예술가의 처우가 문제시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듯싶었다. 순수 예술가 집단을 떠나 사회 전반의 복지 향상을 도모하며 그 안에서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본주의 구조 안에선 작가 개인이 짊어지고 가야될 숙제임을 강조하기도 했었다.

위와 같은 의견들에 난 심정적 동의를 표하면서도, 보편적 복지향상과 예술가의 처우개선 문제가 순차적으로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하고 싶다. 흔히 일각에서 주장하는 “예술가도 노동자”라는 구호는 개인의 선택사항이겠지만, 예술이 자본으로 환원되고 생계를 유지하는데 결정적 요인을 하는 현대사회에서 작품이 자신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노동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사실엔 모두들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노동의 댓가에 대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왜 우리는 주저하는 것일까? 얼마 전 지인은 기획한 전시에 자신의 인건비는 책정할 수 없었지만, 제출용 도록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들여 디자이너의 인건비를 지불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재 ‘장소특정적’ 예술, ‘실험적’ 예술등을 지원한다는 이름아래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업들은 진행성 사업비 및 인건비를 제외한 실제작비만을 예산으로 책정 가능하다. 국가는 예술의 다양성을 적극 장려하지만 그 실행방법에 있어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떠한 제도든 완벽한 모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보면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국가에게 예술가 스스로 노동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부터 선행되어야한다. 이러한 과정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예산의 투명성’과 그를 빗대 ‘행정적 편의성’이라는 두 단어는 공허한 동어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소위 ‘인디뮤지션’은 공연을 하기 위해선 클럽에 오디션을 본다. 클럽에서 열심히 공연을 하여도 손에 들어오는 대가는 없다. 그리고 클럽은 자신들이 번 입장 수익금을 건물주에게 임대료로 바친다. 영세한 클럽의 경우엔 클럽주와 음악가들에게 돌아오는 수익이 거의 없다. 우리들은 허공에 기타로 좆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밤섬해적단, 권용만>

2009년 용산참사 이후 철거투쟁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마포구 동교동 ‘두리반’은 <홍대앞>라는 지역적 특색과 함께 많은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이 연대를 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는 재개발 문제로 위기감을 느낀 영세 세입자뿐만이 아니라 <홍대앞>을 터전으로 삼는 ‘밤섬해적단’과 같은 인디뮤지션들의 고민과 자발적 참여로 가능해졌다.

이제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술가의 처우 개선이 아닌 예술가의 노동을 사회적 비용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자신의 아이디어로 기획을 진행하지만 생계를 걱정해야하고, 좋은 작가를 지지하려 글을 쓰지만 정작 원고료를 받을 수 없는 현실.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지만, 시장과 공간의 눈치를 봐야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현실에 대해 발언하길 주저하면서 몇몇 정치인이 던져준 생계법안에 자존감을 논하다면 모순된 태도가 아닐까

오늘날 많은 기성세대들이 지금의 젊은이들을 보고 무기력하다 쉽게 말하지만 그러한 비판 속에서 나는 자신감을 얻는다. 이러한 변화는 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용기란 스스로 지켜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인간의 사고와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고 그것을 위해 지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라면 이제 예술가들도 잠시 자신의 도구를 내려놓고 자기의 삶과 그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아트인컬쳐 2011.4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