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기고] 기무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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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돌이킬 수 없는 역사다. 사람들이 과거에 함몰돼 힘겨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 일이 벌어지기 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마냥 허우적대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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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4일, 보안사령부(기무사의 전신)를 탈영한 육군 이병 윤석양은 한국 기독교교회 협의회 인권위원회(NCC)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이 탈영 시 가지고 나온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기록을 공개했다.일명 <청명계획카드(체포카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 정치인 주요 인사 및 재야운동가 포함한 1300여명에 대한 인적 사항 및 사상검증을 기록한 대규모 감찰기록이었다. 이 같은 불법사찰 실태가 폭로되자 정국은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였고 노태우 정권 최대 정치적 위기로 비화된다. 그 결과 국방장관 및 보안사령관이 해임되고 보안사령부는 현재 기무사령부로 축소 개편되었다.

보안사령부의 설립 취지는 유신시절 대공간첩사건 담당과 함께 군 감찰을 담당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박정희를 저격했던 김재규(당시 안기부장)과 전두환, 노태우 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이곳 기무사의 보안사령관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이 공간이 70년대를 종언하는 마침표이자 80년대 시대적 비극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더불어 한 개인이 권력의 주변에서 중심부를 바라보며 욕망했던 최전선이기도 하다.

되돌릴 수 없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윤석양 씨의 담담한 소회처럼 역사란 특히 과거가 참혹한 것일 때,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기보다 좌절하지 않는 법을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경험에서 단숨에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끝내 헤어나오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삶이 정지당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운명이라면 좌절하지 않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차라리 과거를 과거로 묻어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 역사의 수레바퀴는 뒷걸음친다.

'과거를 해석하는 열쇠가 미래 속에 있다'는 역사학자 E. H. Carr의 지적처럼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기억이란 동시에 결여되고 있음을 정확히 인지해왔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되살아나는 '유령'들과 호흡했던 잊혀진 목소리들에게 다시 귀 기울일 때, 그들은 다시 한번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여줄 것이다. "절망에 숨 죽이지 말라"고.

* 이 글은 윤석양 씨가 쓴 수기 『아담의 곪은 사과』에서 부분 인용하였습니다.




연표



1988.

02.25. 노태우,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 (제6공화국 출범)

04.26.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여소야대 국회)

11.18. 국회‘광주특위’1차 청문회 실시

11.23. 전두환ㆍ이순자 부부 사과문 발표, 설악산 백담사 은둔

1989.

03.25. 문익환 목사 방북,‘통일 논의하러 왔다’는 도착성명 발표

04.03. 정부, 안기부ㆍ경찰ㆍ검찰ㆍ보안사 등 관계기관 공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공안합수부) 설치, 재야단체에 대한 일제 수색

04.27. 보안사 3처,‘청명 T/F’구성해‘청명카드’(체포카드) 작성 시작

05.03. 부산 동의대 참사사건 발생, 전경 6명 사망 (동의대 사태)

05.10. 수배 중이던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체로 발견됨 (이철규 변사 사건)

05.28.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위원장 윤영규 (전남고 교사)

06.27. 안기부, 간첩 및 밀입북 혐의로 서경원 의원 구속

06.30. 전대협 대표 임수경,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 도착

08.15. 임수경,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 통해 귀환 (구속)

12.31. 전두환 前 대통령, 국회증언에서‘광주ㆍ5공비리’관련 모두 부인

1990.

01.01. 노태우 대통령,‘5共청산’종결 선언

01.22. 민정ㆍ민주ㆍ공화당, 합당 통한 신당창당 선언 (3당 합당)

04.21. 대학생ㆍ재야단체 등 3,000여명, 연세대에서 국민연합 결성

05.01. 윤석양, 군 입대 (3사단 훈련소, 6주 신병 교육)

07.03. 윤석양, 사단 보안부대 연행

08.22. 보안사, 치안본부: 현역군인 10명 포함 ‘혁노맹’사건 발표

09.21. 『말』10월호‘혁노맹 조작’보도,‘이중 스파이’의심(조기탈출 결심)

09.24. 윤석양, 보안사 서빙고분실 탈출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 은신

10.04. 윤석양,‘민간인 사찰’폭로 양심선언 (KNCC 인권위 사무실)

- 동향파악 대상자 색인표 1,303장, 개인신상카드 4명(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박현채), 개인별 동향 파악 내용 입력 컴퓨터 디스켓 30장(447명분) 공개

10.05. 국방부 대변인,“전시ㆍ계엄령 시 적으로부터 보호ㆍ차단 목적”작성 자료라고 발표

10.08. 국방부장관(이상훈→이종구), 보안사령관(조남풍→구창회) 경질

10.10. 국방부,‘보안사 사건 합동조사단’구성

10. 이종구 국방부장관, 국회 국방위 1차 보고 -“대민 사찰은 법적근거 없는 월권행위 인정”

10.13. 확대비상시국회의,“보안사 불법사찰 규탄과 군정청산 국민대회”개최(보라매공원)

10.22. 이종구 국방부장관, 국회 국방위 보고

- 국방부‘합동조사단’조사결과ㆍ개선방안 보고

-“군 보호 목적, 적 또는 좌익 불순세력 연계 차단하기 위해 신상자료 작성”

11.14. 서울민사지법,“보안사 민간인 사찰 자료”증거보전 검증

- 서울민사지법 90카94840호 증거보전 신청사건

- KNCC 인권위, 사본은 법원 제출하고 원본은 국방부에 반환

12.03. KNCC 인권위, '90년도 인권상 수상자로 윤석양 결정

1991.

01.01. 보안사,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

06.27. ‘보안사 민간인 사찰’대상자 148명,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2009.

08.12 기무사 직원 쌍용자동차 노조원 불법 민간사찰